제로센 2

평소 항공기&항공전사 사이트로 감탄해 마지 않았던 '고공출격'에서 퍼온 글입니다.

http://user.chollian.net/~hartmannshim/dogframe.htm



 [2]  와일드 캣의 대반격과 제로의 몰락
 
 
와일드 캣의 대반격

 
많은 조종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내가 와일드캣에 탑승해 1대1로 제로기와 겨룬다면,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편대 규모의 공중전이라면, 상황은 와일드캣에게 훨씬 유리하다. 따로 떨어진 와일드 캣 한 대는 제로기를 피해야 하지만, 와일드 캣 두 대는 제로기 4 -5 대에 맞먹는 파워를 발휘한다."
 
 
초기에 제로센의 밥에 불과하던 그루만 F4F 와일드 캣.... 그러나 뒤늦게 전술의 요를 깨달은 지휘관과 조종사들에 의해, 제로센에 대한 대반격이 시작된다.... 유럽전선에서 P-51 무스탕이 나타나기 전에 그에 비해 딸리는 성능의 P-47 썬더볼트가 힘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듯, 와일드캣은 헬캣, 라이트닝, 콜세어가 등장하기전 썬더볼트와 같은 임무를 수행해 나갔으며, 제로센과 팽팽한 대결을 벌여 나갔다.
 
 
물론 이것은 미국 조종사들의 일방적인 견해일 수 있다. 그러나 이차대전 프롭 전투기들의 공중전이라는 것이, 보이지도 않는 적기를 유도무기로 격추시키는 현대 공중전과는 달리, 적기가 육안에 들어오는 한정된 공간내에서 여러대가 패를 나누어 전투를 벌이게 될 수 밖에 없고, 이럴 경우 일차대전 당시 마치 기사들의 대결 같은 일대일 공중전이란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즉 얽히고 섥힌 공중전 도중, 한대의 적기만을 노리고 기동을 계속하다 보면, 자신을 공격하기 가장 적합한 새로운 적기가 생기게 마련이고, 그들에게 아주 허무하게 격추되어 버리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이것을 노린 것이 타치 위브 전술이라 할 수 있다.  초기 미해군이 제로센에 열세를 면치 못한 이유도, 이런 대규모의 공중전에서 조차 전통적인 맨투맨식 공중전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출격하는 제로센과 승리를 거두고 귀환하라고 환호하는 지상병들.....
 
 
결론적으로 제로센은 1대1에 가장 적합한 기종이라 한다면, 와일드 캣은 팀웍에 타고난 기종이라 말할 수 있겠다. 즉 제로센의 1대1식 도전을 순순히 받아 주던 미해군 조종사들이 전술을 선회해 팀웍을 구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제로기의 전성기는 끝을 보게 된 것이다. 타치 위브를 위시한 미해군의 전술적인 변화는 대규모 공중전에서도 2인 1조의 원칙을 고수했고, 혼전을 유도해, 혁혁한 전과를 달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동료기 하나가 적기의 미끼로 쓰이기는 했지만, 이것 역시 내구성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니, 와일드 캣의 고유의 장점으로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사진]64기 격추를 이루어낸 일본의 에이스 사부로 사카이.... 그는 일본기와 일본 조종사들은 1대1 승부에는 매우 강했지만, 팀웍은 미해군 조종사들이 훨씬 뛰어났다고 증언했다. 또, 화력과 방어력이 뛰어난 미군 전투기와 대결을 위해서는 먼저 일본기가 그들을 발견해야 승산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그는 일본 제로센의 장갑이 취약했던 원인이 크게는 기동성을 위한 희생이었지만, 조종사 자체를 소모품으로 생각한 일본군의 내재된 의식도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다. 이런 이유중 하나로 사카이는 일본 해군은 전투기 보다는 쓸모없는 전함에 너무 큰 비중을 둔 것을 꼽기도 했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 가야하는 와일드 캣과 제로센의 성능차로는 급강하 능력을 들 수 있는데, 이것 역시 내구성이라는 특성의 연장이라 볼 수 있다. 제로센으로 부터 이탈하는 방법으로 대부분의 와일드 캣 조종사들은 급강하를 선택했다. 상승으로 제로센을 피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했지만, 이것 역시 제로센의 단점을 극명히 보여주는 한 예가 된다.
 
즉 제로센은 급강하시 속도가 300 mph를 넘게 되면, 에일러론의 조작이 매우 둔해지고, 롤 속도가 급격히 떨어져 버려, 최대의 장점인 기동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다. 또 350 mph 이상의 속도를 낼 경우, 주익에 균열이 생겨, 떨어져 버리기도 해, 급강하는 한마디로 제로의 쥐약이었다.(반면 와일드 캣의 경우 급강하시 500 mph까지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와일드 캣은 일단 급강하로 제로센으로 부터 안전한 거리까지 달아난 후, 천천히 선회한 후, 재차 헤드온을 시도했다. 와일드 캣이 성능면에서 제로센 보다 여러모로 쳐지기는 했지만, 이차대전 전 기간중 와일드 캣이 이루어낸 격추대 피격추 비율은 6.9 :1 정도로, 결코 만만한 기종은 아니었다.( 참고로 와일드캣의 대반격이 시작되는 1942년 한해 동안 와일드캣의 격추대 피격추비는 5.9 대 1 이었다.)
 
물론 6.9 라는 숫자에는 제로센 이외에 다수의 일본 폭격기와 뇌격기가 포함되어 있지만, 제로센과의 공중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것만은 사실이다. (미드웨이 해전이후 와일드 캣과 제로센의 전적은 1.5 :1 정도로 와일드 캣이 약간 우세했다. 즉 공중전에서 와일드 캣 2대가 손실될 때, 제로기는 3대가 격추당했던 것이다. 물론 이것은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 당시 100 여명의 일류급 일본 조종사들이 전사해버려, 이후 베테랑 조종사가 많이 부족했던 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되겠지만.... )
 
 
[그림] 제로센 관련 외국 서적의 표지그림.... 콜세어에 타격을 가한 후 추적 중인 제로센의 모습....
 
 
여하튼 제로센이 초기에 거둔 화려한 전과는  동시대 이차대전 전투기중 성능이 가장 떨어지는 그룹에 속하던 와일드 캣을 상대로 이룬 것이고, 그 기간도 고작 6개월에 불과했다.  
 
미해군의 전술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제로센은 태평양 전선 전투기 왕좌에서 내려 와야만 했다. 그것도 자신들의 밥으로 여기던 와일드 캣의 반격에 의해..... 1942년 중반 이후, 뛰어난 성능의 제로센과 그 보다 떨어지는 성능의 와일드 캣은 대등한 공중전 결과를 기록했고, 1943년 이후부터는 새로운 미군의 전투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드디어 제로센은 쫓겨난 왕에서 사냥감으로 전락하게 된다.
 
혹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로센이 미국 전투기들과 달리 뛰어난 성능의 후속 모델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는 업그레이드가 불필요할 정도로 초기 제로센의 성능이 뛰어났기 때문이었다고.... 그러나 홈지기 개인적으로은 약간 관점이 다르다. 제로센 개발 도중 우연히 뛰어난 성능을 이끌어낸 행운이, 후속기 개발 과정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라 생각된다. 즉 일본 항공기 제작술의 낙후가 제로 업그레이드의 최대의 적이었던 것이다. 제로센은 자신의 최대의 장점인 기동성을 위해, 전투기의 생명끈 중 하나인 장갑을 포기해야만 했고, 이 덕분에 6개월 간의 전설을 만들어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이 도리어 최대의 약점이 되어 버렸고, 뒤늦게 취약한 내구성을 보강하는 과정은, 제로기 최대의 장점인 기동성을 상실케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코가의 제로센

 
[사진] 추락해 사망하면서, 미군에 제로센의 결정적인 정보를 누출하게 되는 일본 해군 조종사 코가의 모습....당시 그의 나이 고작 19세였다.
 
 격추된 제로센 한대에 의해 베일에 싸여 있던 제로센의 실체가 여실이 드러나게 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러니까 1942 6월 초, 19세의 일본 해군 조종사  타다요시 코가(Tadayoshi Koga)는 귀환 도중, 연료 탱크에 데미지를 입고, 가까운 섬에 불시착을 결심하게 된다. 코가는 동체착륙에 적합한 지역을 찾다가, 풀이 무성이 자란 넓은 평지를 발견했고, 그곳에 착륙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곳은 초원이 아니라 늪지대였고, 코가의 바퀴가 지면에 닿자마자, 그의 제로센은 늪지에 빠지면서, 기체가 한바퀴 뒤집어지고 말았다. 코가는 그자리에서 목이 부러져 사망했고, 그의 A6M2 제로센은 손상을 입기는 했지만, 폭발없이 부품과 주 프레임은 온전히 보존되었다. 얼마후 우연히 미군에 의해 그 제로센의 잔해가 발견되었고, 곧 미국 본토로 옮겨져, 성능시험에 들어감으로써, 제로센은 베일을 벗고 세상에 알몸을 드러내게 된다.
 
 
추락했지만, 부품과 프레임이 보존된 코가의 제로센....
 
 
코가 제로센의 성능을 시험하면서, 미국은 제로센의 장단점을 정확히 알아 낼 수 있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낮은 속도에서 기동성이 뛰어나다.
2. 엔진의 토크 현상 때문에 우측으로 롤(Roll)기동이 좌측에 비해 취약하다.
3. 속도가 300 mph 이상이 되면, 에일러론의 작동이 힘들어,
    기동이 현격이 감소한다.
 
4. 엔진 캬부레터의 문제로 하강시, 엔진이 종종 멈춰 버린다.
 
 
 
코가의 제로센이 미국에의해 복원되어 성능시험을 받고 있는 모습... 미군마크를 단 제로센의 모습이 이채롭다. 이 코가의 제로센은 많은 와일드 캣 조종사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이런 시험 결과를 토대로 미해군은 제로센에게서 효과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게 된다. 즉 와일드 캣 조종사가 제로센에 쫓기게 되면, 일단 급강하로 회피를 시작해, 속도가 300 mph에 이르면, 우측으로 롤을 해, 제로센의 추격을 빠져 나가는..... 이런 내용은 와일드캣 조종사들이 출격하기 전 언제나 귀에 못이 박히게끔 반복 강조되었고, 결과적으로 코가의 제로센은 많은 와일드 캣 조종사들의 생명을 구한 것이며, 또 제로센과의 공중전을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많은 전술 연구의 효시가 되었다.  
 
 
 
A6M3  

 
[1] 32 형
 
1941년 중반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A6M3 형은 1942년 초반부터 남태평양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2단계 슈퍼차저를 장착한 1130 마력의 나까지마 NK1F 사카이 21형 엔진을 탑재했으며, 프로펠러의 크기도 약간 커졌다. 또 날개의 둥근 끝을 가위로 잘라낸 것 처럼 각지게 만들었는데(이것으로 주익의 길이가 약 1m 정도 짧아짐으로써, 최고속도와 롤속도가 약간 증가했지만, 선회력은 약간 감소했다), 미해군은 날개의 외형적인 변화 때문에, A6M3를 제로센과 구별되는 새로운 기종으로 판단해 Hamp라는 코드명으로 부르다가, 나중에 동일 기종의 업그레이드 버전임이 밝혀져, "Zeke 32 "라는 코드명을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미국은 A6M을 Ben, Ray 등의 코드명으로 부르다가, Zeke, Zero라는 코드명으로 바뀌어 이것이 종전까지 사용되었는데, 역시 Zeke 보다는 Zero라는 말이 더 널리사용되었다.)
 
 
 
 
A6M3 형의 모습.....  날개끝이 각지게 변했는데..... 이것으로 날개 길이가 짧아지고, 생산이 더 용이했다고 한다.... 그러나 선회력은 약간 저하 되었다.
 
 
또 슈퍼차저로 유입되는 공기흡입구의 위치도 이전의 카울링 아랫쪽에서, 윗쪽으로 변경되었으며, 각기 60 발이던 20 mm  기관포의 장탄수도 100 발로 늘려 화력이 보강되었다. A6M3  32형은 총 343대가 생산되었다.
 
 
A6M3 의 제원

엔진 : 나까지마 NK1F 사카에 12형
날개길이 : 11.00m
동체길이 : 9.06m
높이       : 3.51m
중량       : 1810kg
최대속도 :  545 kph
한계고도 :  11000m
항속거리 : 2380km
무장       :   20mm 기관포 2정
                  7.7mm 기관총 2정  
                  60kg 투하용 폭탄 2개

 
 
[2] 22형
 
A6M3  32형이 날개의 끝을 각지게 변형해 A6M2와 확연히 구별되는 모습을 가졌다면, A6M3의 두번째 버전인 A6M3 22형은 이전의 둥근 날개를 그대로 유지한 기종으로, 주익에 연료탱크를 장착해 제로센 중 가장 긴 항속거리를 가진 버전이기도 했다. 또 기존 20mm 기관포의 총신 길이를 늘여, 사정거리와 발사속도를 향상시킨 A6M3 22 갑(A) 형이 등장하기도 했으며, 22형은 1943년 여름까지 약 560대 가량이 생산되었다.
 
 
 
 
내구성과 맞바꾼 기동성 -  A6M5

 
[1] 52형
 
1942년 늦여름 P-38 라이트닝이, 또 1943년 초부터는 F4U 콜세어가 태평양 전선에 속속 실전 투입되기 시작했는데, 제로센은 이들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된다. 이 미국의 신형기들은 최고속도, 화력, 내구성, 고공 기동성에 있어 제로센의 한계를 사뿐히 뛰어 넘었고, 와일드 캣에 의해 팽팽히 유지되던 태평양의 제공권은 이제 완전히 미국에게 넘어가고 만것이다. 신형기에 충격을 받은 일본해군은 제로센의 성능을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A6M5형으로, 처음엔 A6M4 형을 구상하기도 했지만, 엔진에 문제가 생겨, 양산이 취소되었고, 그 후속 버전으로 A6M5 (52형)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때가 1943년 여름.....
 
 
 
A6M5형......  가장 많은 생산량을 기록한 제로센이다.... 화력과 장갑을 보강해 급강하 능력등이 상승했지만, 전통적인 제로의 기동성에는 심대한 문제가 생겼다.
 
 
[그림] 태평양 전쟁 후기, 새로이 등장한
미국의 신형기들 앞에 제로센은 열세에 놓여 이젠 사냥감으로 전락하고 마는 신세가 된다. 제로센을 잡기 직전의 콜세어......
 
 
A6M5형은 초창기부터 제로센의 문제거리였던 내구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익을 좀 더 두꺼운 금속재 스킨으로 덮어, 어느 정도 내구성을 강화했고, 그에 따라 급강하 능력도 좋아졌지만(급강하시 최고 속도 410 mph 까지 가능했다고 한다), 늘어난 중량 때문에 제로센의 최대 장점인 기동성에 심대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새로운 전투기인 A6M5형이 실전에 배치되면서,  일본해군은 다시 한번 도약을 꿈꾸었지만, 곧이어 전선에 등장한 미해군의 신형 전투기 F6F 헬캣에 의해 찬물을 뒤집어 쓰고, 한낮의 개꿈에서 깨어나야만 했다. 핼캣은 와일드 캣의 후속버전으로 일본 제로센에게는 죽음의 사자나 마찬가지였다.  
 
1944년 6월 14일, 마리아나스의 연합군 세력을 일소하기 위해, 108기의 A6M5기들이 급강하 폭격기와 뇌격기를 호위해 공격에 들어갔지만, 미국 F6F 헬캣의 요격을 받아, 이날 단 하루만에 300 여기의 일본기가 격추되어 버리고 만다. 이날의 사건을 마리아나스의 칠면조 사냥(Marianas Turkey Shoot)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마리아나스의 바다는 제로센의 수중 공동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역시 헬캣은 "제로센 킬러".......
  
 
 
[2] 52 갑 형(52A 형) ,  52 을 형(52B 형),  52 병 형(52C 형)
 
곧이어 20 mm 기관포의 탄환 공급을 기존의 드럼형태에서, 벨트혈태로 바꿔, 125발까지 장탄수를 증가시킨 A6M5 52 갑(A)형이 생산되었다.
 
또 카울링 상단의 2정의 7.7 mm 기관총 중 한정을 13 mm 기관총으로 교체하고, 캐노피 전면의 방판유리 강화, 연료탱크 자동 소화 장치를 새로이 장착해 내구성을 개선한 A6M5 52 을(B) 형이 생산되었다. (A6M5형은 총 6000 대 가량이 생산되었는데, 제로센의 모든 버전 중 최고의 생산으로 기록된 버전이기도 했다. 또 52A형의 경우 급강하시 460 mph까지 견딜 수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어, 기동성과 내구성의 맞바꾸기가 어느정도 성공한 것을 알 수 있다)
 
 
 
주익의 무장으로 보아 A6M5 C형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주익에 13 mm 기관총을 추가로 장착해 화력을 강화시킨 52 병(C) 형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런 변화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제로센의 업그레이드 과정은 한마디로 내구성과 화력의 보강 과정이었으며, 동시에 최대의 장점인 기동성의 후퇴 과정이기도 했다.
 
 
A6M5의 제원

엔진 :  나카지마 사카에 21 형 1130 마력  
날개길이 :  11. 00m  
동체길이 :  9. 12m  
최대속도 :  565 kph  
항속거리 : 1550 km  
무장 :  7. 7 mm 기관총 2정
          20 mm기관총 2정  

 
 
 
 
라바울의 악마   히로요시 니시자와(Hiroyoshi Nishizawa)

 
독일에 에이리히 하르트만, 러시아의 이반 코체더프, 미국에 리차드 봉이 있다면, 일본에는 니시자와가 있었다.... 히로요시 니시자와는 이차대전 기간 중 일본의 격추 기록 1위의 에이스로, 제로센을 이용해 87기의 격추를 달성했다고 전해진다. 일설에 의하면 격추기록이 200기에 육박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으나, 정확한 근거는 없다. 이것은 태평양 전쟁 중반이후, 일본해군이 각 조종사들의 격추 기록 계산을 포기한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사진] 일본의 탑건 니시자와의 모습..... 라바울의 악마란 별명을 얻은 그는 독일 마르세이유에 버금가는 기동의 천재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니시자와는 유도와 스모를 좋아했지만, 체격은 매우 외소하고, 볼품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동료인 사부로 사카이는 그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니시자와가 제로센에 탑승해 보여주는 기동술은 한마디로 공중곡예였다.... 그는 타고난 기동술의 천재였고, 날카롭고, 예상치 못한 기동을 서슴없이 해내곤 했다. 보고 있자면,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고,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기동도 니시자와는 해낼 수 있었다. 또 그는 사냥꾼의 눈을 가졌고, 어떤 누구 보다도 먼저 적기를 발견해내곤 했었다."
 
1942년 불과 22세라는 젊은 나이에 니시자와는 남태평양 상공에서 "라바울의 악마" 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1942년 8월 7일, 니시자와는 18기의 제로센을 이끌고 27대의 G4M 폭격기를 호위하며, 임무비행에 나섰는데, 곧 미국의 와일드캣 18대와 16기의 SBD 급강하 폭격기 대편대와 조우하게 되었다. 이때 니시자와는 단독으로 6기의 와일드 캣을 격추시키는데, 이중에는 미국 해군 조종사 허버트 브라운(Herbert S. Brown)의 탑승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허버트는 니시자와에게 격추된후 다행히 무사히 구조될 수 있었는데, 나중에 그때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고 한다.
 
"적기는 내 후상방에서 강하하면서 기총사격을 개시했읍니다.... 적탄에 캐노피가 날아갔고, 내 다리는 관통상을 입게 되었죠. 그리고 와일드 캣은 검은 연기를 뿜고 점점 고도가 떨어지기 시작했읍니다. 바로 그때, 나를 명중시킨 제로센이 내 전투기 바로 옆에 나란히 붙더군요... 내가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그도 바로 옆에서 점점 출력을 잃고 강하하는 나를 보고 있더군요.... 그 일본 조종사는 씩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더군요..... "
 
(마치 탑건에서 탑 크루즈가 적기의 상방에서 캐노피를 거의 맞대고 사진을 찍는 장면이 생각나는 이야기다.....^.^ )
 
 
 
[사진]라바울에서 활약할 때의 니시자와의 모습.. 일본도를 짚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1944년 10월 25일.... 니시자와는 3대의 A6M5 제로센을 이끌고 출격했는데, 이날의 임무는 미군항모에 대한 자살공격에 나선  5기의 일본 항공기를 호위하는 것이었다....  미군 항모에 접근했을때 고공에서 헬캣기들이 급강하 공격을 시도해 왔고, 니시자와는 이중 2대를 격추시켰다. 이것이 니시자와의 마지막 격추로, 개인 통산 86, 87기째 격추기록이었다. 이날 가미가제 공격도 성공을 거두어, 미항모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고, 항모는 끝내 격침되었다고 전해진다....  
 
기지로 돌아온 니시자와는 자신의 직속 상관 나까지마에게 임무 보고를 하면서, 바로 다음날 가미가제 공격에 자신도 출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나까지마는 소스라치게 놀라,"자네 같은 우수한 인재는 끝까지 살아 남아야 해..."하며,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그러나 니시자와는 거의 빌듯이 자살 공격에 참여시켜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나까지마의 태도는 완강했고,  니시자와는 풀이 죽어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후, 니시자와의 제로센은 다른 조종사가 탑승해 가미가제 공격을 위해 출격했고, 니시자와는 몇몇 조종사들과 함께 새로운 제로센을 후방기지로부터 이동시키기 위해, 단체로 폭격기에 탑승했다.  그런데, 기지를 이륙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각.... 미국 제 14 비행대 소속 헬캣기 2대가 일본의 폭격기를 가로 막았고, 곧 집중 사격을 당한 폭격기는 화염에 휩싸여 격추되고 말았다. 일본 해군 조종사들에게 천하무적의 에이스로 추앙받던 니시자와는 폭격기 속에서 어이 없는 죽음을 당하고 만것이다. 니시자와가 자살 공격대에 자원하려 한것은 가미가제 조종사들의 불운한 최후를 목격한 후, 도의적으로 그들의 뒤를 따르려 한 것일까? 아니면, 얼마후 있을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한 행동이었을까?
 
최후의 제로기들  A6M6 과 A6M7, A6M8

 
A6M6 형은 A6M5 C형과 거의 유사한 형태였다고 하는데, 1944년 11월 부터 생산되었고, 총 93대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장갑판을 좀더 보강했고, 자동봉입 연료탱크를 장착해, 자체 방어력과 내구성을 강화했다. 카울링에 두정이던 7.7 mm 기관총을 한정의 13 mm 기관총으로 교체했고, 각 주익에 한정씩의 20 mm 기관포와 13 mm 기관총을 장착해 총 5정이 장착되어, 화력 역시 보강되었다.
 
그러나 엔진의 변화없이 화력과 장갑의 증가로, 기동성이 상당히 둔화되었다. 미츠비시 항공사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1944년 말, 물, 메탄올 분사 장치를 설치한 새로운 사카이 31형 엔진으로 교체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전세는 도리킬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 버렸고, 이미 구형이 되어 버려 훈련기 등으로 쓰이던 A6M2기가  먼저 가미가제 공격기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A6M7형과 A6M8형이 생산되기도 했으나, 전쟁은 이미 끝나가고 있었고, 신풍 역시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다.
 
 
출격에 앞서 출정식을 갖는 제로센 조종사들......
 
 
제로센은 태평양전쟁의 시작과 끝을 같이한 일본의 전투기였고, 마치 일대일 진검 승부에 능한 자객이나 낭인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기체다.....태평양 전쟁 초기, 거추장스러운 갑옷과 투구를 벗어 던지고 일본도를 휘두르며 적진을 유린하던 지로....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대규모 전장에서 기마병이나, 두터운 갑옷으로 무장한 중보병에게 열세를 면치 못하게 되고, 뒤늦게 갑옷을 챙겨 입다가, 최후를 맞이하고 만 것이다.
 
 
 
홈지기 한마디 더.......

 
일본도, 혹은 사무라이라고도 하는 제로센을 조사하면서, 여러 자료를 모았고, 일본 인터넷 싸이트까지 찾아 자료를 수집했읍니다. 이 자료의 열에 팔, 구는 제로센의 찬양일변도였고, 이런 수많은 자료에 똑같은 칭찬을 되풀이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해, 열에 한두 개에 불과한 자료를 이용해 제로센에 딴지를 걸어보았읍니다..... ^.^
 
또 홈지기가 일본과 골깊은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국인이라는 요소도 글의 방향을 이끄는데 크게 작용했던 것 같읍니다. 이점 제로센을 아끼시는 항공팬들께는 맘에 안드는 구석이 있었을 지 모르나, 이해를 바랍니다.
 
어쨋든, 일본이 만든 작품 제로센이 천하무적의 전투기는 절대 아니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어땠는지 모르겠읍니다. 마지막으로 일본 제로센 싸이트에서 읽은 글을 이야기하며 끝을 맺으려 합니다... 대강 그뜻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 여하튼, 영전은 이차대전 중 가장 뛰어난 전투기 중 하나였고, 영전을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이 전후의 폐허속에서 일본이 공업강국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한 정신적 버팀목이 되었다. ----"
 
그러나 이차대전 종전 후, 전범국으로서 독일처럼 분단되었어야 할 일본이 도리어, 분단국 한국의 인접국이 되면서, 수많은 혜택을 받았고, 그 힘이 그들의 재건에 큰 몫을 한 것이니, 이런 일본인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씁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사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격어야 했던 것도 일본인들이고, 동서로 허리가 잘렸어야 하는 것도 사실 일본열도였는데 말입니다.... 또 "JSA"나 "쉬리" 같은 영화를 수입해 마지막 감동적인 장면이 스크린에 비칠때, 이웃나라의 아픔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고, 뜨거운 기립 박수를 쳤어야 할 사람들은 사실 일본인들이 아니라 한국인들이었는데 말이죠 ..........
 

by viper | 2007/10/12 13:07 | Arms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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